기절할 듯 깔깔거리고 본 책, <남쪽으로 튀어>.
"그럼 나는 국민을 관두겠어." 아버지가 가슴을 쭉 젖히며 말했다.
"예?" 아주머니의 목이 앞으로 쑥 내밀어졌다.
"국민이기를 관두겠다고. 애초부터 원했던 일도 아니었으니까."
"...어디, 해외로 이주하시려고요?" 갑자기 목소리 톤이 낮아진다.
"내가 왜 해외에 나가? 여기 거주한 채로 국민이기를 관둘 거야."
그리고. 아빠는. 오키나와로. 갔다. 일본사람. 이지만. 일본국민은. 안. 하겠다고 선언하고.
아들은 아빠를 찾으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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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청년유니온 신입조합모임에 갔다가, NHK에서 촬영을 나온 일본인을 보았다.
청년유니온에 대한 5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찍어 일본에서 방영할 계획이라 했다.
"일본에도 한국처럼 청년 실업 문제가 심각합니다. 그런데 일본에선 한국 젊은이들처럼 직접 나서서 권리를 주장하는 움직임이 없어요. 매우 흥미있는 현상입니다. 일본 젊은이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어요."
그는 우리의 작은 움직임와 반응 하나 하나에 크게 관심을 가졌다. 우리가 말하고, 웃는 모습을 부지런히 카메라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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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때 일본 사회주의 운동사에 대한 책을 읽고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전공투. 우리나라 빨치산이나 민주노조 운동보다도 격렬하고 급진적이었을 것이다. '어떻게 지금 일본 사회는(당시엔 자민당 집권기니까) 우파정당이 38년동안 장기집권할 수 있었지?' 책에서 설명한 일본 좌파운동사와, 내가 알고있는 지금의 일본은 전혀 다른 사회 같았다.
'그럼 전공노는 다 어디로 갔지?' - 책은 이렇게 답했다. '궤멸됐다.'고.
'그래서 일본 정치와 사회가 정체됐구나.' 라고 생각했다.
<남쪽으로 튀어>를 읽고 그런 편견에 균열이 갔다. 유쾌하게.
과거 전공노였던 주인공의 아버지는 지금은 아나키스트가 됐다.
생각해보니, 호주 여행하면서 만났던 몇명의 일본 남자아이들은 '꽤나' 아나키스트 같았다. 나에게 '타도신데(=즐겨라?)' 란 말을 가르쳐 준 동갑내기 남자아이도, '경계없이, 즐기며 살기'를 삶의 철학으로 삼았다. (그 경계가 국경인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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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여튼, 재밌었다.
그러나 카테고리 이름이 '국경의 남쪽'인 이유는
아나키스트와 아무 관련 없다. 이 책과도 관련이 없다. 그냥...
해외여행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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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 북 쪽으론 가본 적이 없으니까. 중국도 남쪽만 가봤고, 러시아나 몽골도 안가봤으니 말이다.
국경 남 쪽만 가본 셈이다.
언젠간 국경의 북쪽도 여행할 날이 오면 카테고리 이름을 바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