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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스테이] 3. 산책

2012.08.14


낚시를 좋아하는 40대 중반 남 L씨. 연상의 아내 K씨, 그들의 외동딸 C양. 


L씨가 끓여 낸 핸드드립을 마셨다. 여행다닐 때 옷가지를 하나 더 빼도, 좋아하는 커피 드립기는 챙긴다는 애호가 L씨. 엄마가 만든 샌드위치는 아이가 좋아하는 블루베리 잼을 바른 식빵에 계란과 토마토, 상추를 넣어 만든 유사 군대리아 표 맛이 기막혔다. 덕분에 커피와 샌드위치로 아침을 근사하게 시작했다.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이렇게 하루 반나절도 채 만나지 않은 사람들과 상을 함께 할 날도 많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마을길을 걷다


<주인장이 그린 마을 손지도> 


걷기 좋은 길을 상세하게 그렸다. 


휴가를 지리산 근처에서 보내기 위해 혼자 내려와 구례에서 1박, 이곳에서 1박했다는 31세 J양과 함께 '기분좋은 언덕길'을 따라 실상사로 향했다. 처음보는 사람들에게도 붙임성 있는 그녀는 역시 네 자매의 첫째. 커다란 소나무에 붙어 올라가는 담쟁이를 보며 '쟤도 어디에 붙어야 잘 살지를 참 잘 아네.'라며 눈썰미 좋은 표현을 연신 쏟아내던 그녀는 직업도 글쟁이. 길을 빙빙 돌아 막다른 길에 닿아도 괘념치 않고 '재밌었다'며 즐기는 낙천적인 성격. '기분좋은 숲길'은 서른살에 대한 소회를 나누기에  

딱 '기분 좋았다'. 



"이렇게 쉬는 건 좋지만, 돌아가면 또 걱정이 되니."

"지금 좋으면 됐어요. 순간 순간 좋게 살면 돼죠."란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천년묵었다'고 마을 어른들이 말씀하시는 소나무>



몸빼바지를 입고 평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으니, 다들 내가 주인인 줄 알고 말을 걸어왔다. 

"저도 온지 이틀밖에 안됐어요." 라고 하면 깜짝. 벌써 너무 편안해 진 듯.



<실상사에서 사온 차>



주인장이 일을 나간 사이, 방을 비운 객실을 살짝 정리해 줘 고맙다며, 사례로 운봉까지 드라이브를 나갔다. 


이틀동안 실상사 인근만 걸어다니고도 '와 아름답다, 멋지다'를 연발하던 나는, 운봉으로 향하는 길 내내 탄성을 멈추지 못했다. 


운봉. 춘향전에서 변학도 생일날 초대된 이 중에 운봉사또도 있었지. 그것 밖에 아는 게 없었다. 

그런데... 직접 와서 보니 이름 참 잘 지었다. 높디 높은 지리산이 완만하게 마을까지 평지로 품을 드리웠는데, 봉우리마다 구름 바다가 가득했다. 이름 그대로 구름 품은 봉우리. 절로 탄성이 터져나왔다. 



<창밖으로 구름 걸린 산, 운봉>



'가시연'이라고, 커다란 연잎에 가시가 돋아있는 연잎이 독특하다. 밭 한 가운데 있는 평범한 저수지에 있다. 멸종위기종이란다. 최근 이 자생지를 발견해, 국립수목원에 등록절차를 밟고 있단다. 


<가시연>


아름답다, 아름다워. 

그래서 토지나 혼불, 태백산맥에서 모두 지리산을 그리워 하는구나. 지리산에 오르기만 하고 '나는 지리산을 압네'라고 하면 절반도 모르는 거란 걸 실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