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가족이 가고 난 후 한옥집은 조용했다. 혼자 삼일 쉬러온 문간방의 언니도 방에서 조용히 책을 읽었다. 나는 대청마루에 앉아 책을 읽었다. '혼불'은 오래된 소설이라 지나친 유교적 가치관 같은 부분이 공감이 가진 않았다. 그래도 전통예식이나 풍습, 언어같은 부분을 섬세하게 표현한 점은 경탄스러웠다. 더구나 배경이 되는 지역이 이근방인 남원이니 더욱 관심이 생겼다.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평상에 앉아 빗소리를 들으며 책을 읽으니 행복하단 생각이 절로 일었다. 이 감정이 평안함과 행복이구나 잊지 앉기위해 하늘을 쳐다보며 기분을 뇌의 한 공간에 저장해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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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간방에 머무는 언니와 도서관에 갔다. 유심히 책을 고르고 살피던 언니는 나중에 들으니 출판사에서 일한다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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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내초등학교 도서관>
돌아와서 저녁을 함께차렸다. 오전에 실상사 갔다오는 길에 꺾어온 호박잎 몇장과 깻잎, 텃밭의 가지를 따다가 청양고추와 같이 넣었다. 양념은 소금뿐인데도 맛이 '있었다' 뿐만 아니라 '좋았다' 양념이 없어도 맛이 좋은건 밭에서 방금 따 온 신선함 때문인 것 같다. 깻잎도 막 따서 씻어 밥을 먹으면 그 향긋함이 마트에서 산 것과는 분명 달랐다. 훨씬 강하고 싸하다. 아까 실상사에 다녀올 때 호박잎을 따왔는데, 전기 밥솥에 '고구마 삶기'모드로 놓고 두번 쪘더니 먹을만하게 익었다. 맛있다 맛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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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와 맥주 한 캔씩 따서 반주삼았다. 삼십대 후반인 언니에게 나의 삼십대는 어떻게 시작해야 좋을지 물었다. 언니는 '무엇이 하고 싶으냐'고 물었다. '무슨 직업이' 하고싶다면, 무엇을 하고 싶기에 그 직업을 갖고 싶은지도 물었다. 그 말이 밥상을 물리고 나서 잠자리에서도 떠나지 않았다. '무엇을 하고 싶어서.' ?
주인장 언니의 친구 '해맑은 토끼'님이 산넘어 구례에서 놀러왔다. 맛있는 차를 청하기에 네 여인이 모여앉아 차담을 나눴다. 지리산에 내려와 씩씩하게 살고 있는 젊은사람들 이야기. "꼭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촌에서 할 일은 많아요." 학교에서 방과후 교사를 하는 사람, 아님 학교에서 청소를 하는 사람, 국립공원 매표소에서도 일해도 되고, 만두공장에서 일할 수도 있다. 먹고 살 방도는 많다. 생각만 넓히면. 돈을 많이 모아서 근사한 집을 지어 내려오지 않아도 된다. 시골에선 서울보다 돈도 덜 필요하고 할 일도 많다.
"서른살인데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큰일이예요."
라니,
"다 해도 돼, 다!"
라는 말에, 마음을 꽁꽁 동여맸던 '불안함'이 탁 하고 터지는 것 같았다.
창호지 너머 선선한 가을 밤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기분 좋게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