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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한달] 10. 비오는 날 둘레길 3코스, 알프스가 따로 없네!


2012. 8. 24


제목이 좀 오바스럽다 생각하신다면. 

직접 보여드릴 수도 없고 ... 이거 참 경치가 좋은데 ..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네.


실상사 -> 등구재 가는 길, '중황마을' 다랑이논길


등구재 넘어 창원마을 근처. 구름에 휩싸인 봉우리가 천왕봉이오~


아무리 좋은 렌즈도 눈으로 담는 것만 못하다는데,

핸드폰에 달린 그닥 좋은 렌즈도 아니고 찍사 실력도 변변치 않은 점을 더욱 감안해 보신다면 

직접 보면 얼마나 아름다울지는 짐작이 가능하시리라.. 




지리산엔 둘레길이 여러개 있는데, 인월 ~ 금계 구간이 3코스다. 

거리가 장장 19.3km가 되니 하루에 다 걸으려면 아침에 일어나서 해질 무렵까지 꼬박 8시간 가량을 걸어야 한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인월 - 산내/ 산내-금계 이렇게 이틀에 나눠서 걷는 것 같다. (여기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그렇게 걷는 손님들을 여럿 봤다.) 1박2일에도 나온 구간이라, 곳곳에 '은지원이 왔다 간 집'이란 현수막을 볼 수 있었다. 허허. 



오늘 걸은 길


서울에서 친구가 내려오는데, 버스가 실상사 앞에서 선다. 그래서 실상사 뒷편 하황마을로 올라가 중황- 상황 마을을 거쳐 둥구재로 올랐다. 하황, 중황, 상황마을은 산 중턱마다 논밭이 층층이 있고, 마을이 산 속에 쏙 들어가 있어 아담한데다, 마을 맞은 편으로 지리산 높은 봉우리를 마주하고 있어 매우 아름다웠다. 


중황마을 입구에 400년된 느티나무가 우람하다 



 

다랑이 논. 기계작업하기가 까다로워 보이는데 경작하기 힘들 진 않을까? 


상황마을까지 쭉 걸으며 등구재 가는 방향을 잡기가 어렵지 않았다. 올레꾼 쉼터도 간혹 보였고,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팻말 덕에 길을 쉽게 찾았다. 마을이 끝나니 곧 흙길이 나왔다.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진흙탕에 빠질까봐 조심했지만, 비가 온 덕에 나무와 풀잎이 푸르렀고, 간혹 비추는 햇빛에 검게 젖은 나무 줄기와 연녹색 풀이 대조를 이뤘다. 원시림을 찾는 기분? 


빗물이 내려가는 길목에 총총히 솟아난 풀잎이 귀여워 '꼬계곡'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등구재 넘어 창원마을로 가는 숲길은 길이 좁고 풀이 무성했다. '시크릿 가든'에 나올 법한 독특한 분위기. 



등구재를 넘으니 흙길이 끝나고 포장된 임도가 나타났다. 산 중턱을 돌아가는 포장도로는 맞은편 지리산 높은 봉우리들을 한 눈에 보면서 걷는 길이었다. 농장 주인이 길손들 쉬어가라고 원두막을 지어놨다. '천왕봉이 제일 잘 보이는 원두막'이라고 이름도 붙여놓았는데 과연 그랬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금방 금계마을이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포장도로 끝에 다시 숲길이 나오고, 숲길을 따라 한참 들어가니 다시 포장도로가 나타났다. 한시간 반 가량을 더 가야 겨우 금계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벌써 해가 지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져서 돌아갈 방법이 있을까 걱정스러웠다. 끝날 듯 한데 계속 다시 이어지는 길이라 우리는 '밀땅의 달인' 코스라고 이름 붙였다. 


금계마을은 번화했다. 번듯한 펜션도 많고 민박집도 당연히 많았다. 큰 길가에 있어서 차가 접근하기 좋은데다가 천왕봉을 비롯한 지리산 큰 봉우리들을 바라보는 시원한 경치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고 했다. 마을에 다다라 '나마스떼'라는 찻집에 들러 팥빙수를 먹었다. 완전히 깜깜해지고 산 중턱에 드문 드문 불빛이 반짝였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며 달달한 빙수를 먹고 있자니 이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ㅎ 


약 네시간 정도 걸은 둘레길. 맑은 날도 좋겠지만 궂은 날씨에도 실망스럽지 않았다. 동서울에서 딱 세시간 반 버스를 타고 실상사에 내려 걷는다면, 순식간에 요런 알프스 길에서 안구정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