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9. 1
상추에게 바침
상추여.
영롱한 이슬을 머금은 상추여.
어둑어둑한 새벽길 위를 빨간 장화를 신고 너를 찾아갔노라.
아직 주인이 오지 않은 비닐하우스에서
'나는 성실하니까'라고 흐뭇하게 웃고선 방석을 깔고 앉아 너의 잎새를 매만지기 시작했노라.
태풍이 쓸고 간 너는 상추가 아닌 금추 - 한 근에 6천원을 호가한다는 너는 고기보다 귀한 몸.
너를 출하하기 위한 바쁜 주인 농부 부부의 손놀림..
비바람이 부는 동안 버려졌던 너는
손바닥보다 크고 누렇게 떠버려 상품이 될 수 없는 수많은 잎새를 달고 있었지.
그것은 바로 '전잎' -
나는 너의 전잎을 따내고
오늘 저녁 출하 될, 순결한 '상품 가치가 있는 어린잎'만 남기는 임무를 맡았다.
"비바람을 견디느라 고생했구나."
"조금 흠집이 났다고 버려지는 너는 너무 아깝구나."
너와 대화하면서 전잎을 따는 나는
허리 한 번 펴지 않고 부지런을 떨었으나,
하우스의 주인 어르신은
"아니, 제대로 잎을 싹싹 골라내지도 않고 뭐했대? 이럼 우리가 일을 두 번 해야 하잖여" 라며 얼굴을 찌푸리셨지...
주인 아주머니께서는 "이만 일을 중단하도록 하자. 저녁땐 이웃 아주머니를 불러 일을 마치겠단다."라고 하셨고,
송구스러워 얼굴이 붉어진 나는 "제가 일을 오히려 만든 셈이 됐으니 오늘 일당은 받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지.
아주머니는 대차게
"그럴 수 없다. 그럼 만 원이라도 받아."라고 호기롭게 돈을 건네시며
"처음엔 다 그렇지 뭐." 라고 토닥여 주기도 하셨다.
아주머니 스쿠터 뒤에 타고 두루루룽 집까지 가는 동안
'즐거워 보이는 농사도 임노동이 되면 고되구나. 농사를 짓는다면 즐거울 만큼만 짓자.'라고 생각했다.
상추여.
잠시나마 너를 만나 반가웠다.
앞으로 너를 볼 때마다
네가 얼마나 예민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존재인지를 떠올리며
쌉싸름한 너의 맛이 조금 더 씁쓸하게 느껴질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