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되기! 어렵지 않아요 ~
1. 하루종일 딩굴, 빈둥대며 view가 좋은 방에서 흙마당을 거니는 참새랑 꽉꽊대는 파랑새 구경하기
2. 그 동네사람들만 안다는 고즈넉하고 시원한 물가에서 첨벙이기
3. 끼이익 대는 고물 자전거 타고 실상사, 마을절 한바퀴
4. 가끔은 무섭게 올라오는 무서운 풀, 뽑기 농활로 몸풀기
5. 그래도 몸이 덜 풀리면 힘 조절 안되는 보리(개 이름) 데리고 산책하기
6. 마을도서관을 내집처럼 찾아 그림책으로 마음 채우고, 인문서적으로 머리 채우기
7. 집주인이 그린 귀요미 지도를 들고 마을과 논두렁, 밭두렁을 넘나들며 해질녁 마을 산책하기
8. 그러다 저녁이 되면 참새방앗간같은 동네 주요 술집에서 생맥주도 한 잔~ 캬아~
from 감꽃홍시 주인장 블로그 지리산을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 http://plain0207.egloos.com/2877230
-> 요것은 지리산 뱀사골과 백무동 사이에 있는 산내면 게스트하우스 감꽃홍시 안내 글이예요. 이 글에 혹해서 내려왔지요. 저는 8월부터 9월초까지 4주동안 구들방에 묵는 장기 투숙자 '지리산 히치하이커'가 됐습니다.
저는 본디 여행은 많이 다녀도 정보성 블로그는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귀차니스트입니다만,
좋은 쉼터를 제공해 준 주인장 언니의 사업이 번창하기를 기원 + 지친 삶을 치유하고픈 유랑자들에게 도움이 되고파 알찬 정보가 가득 담아 포스팅을 하기로 맘먹었습니닷 ㅎㅎㅎ
1. 위치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722-1번지. 지도에서 찍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주변에 큰 고장인 함양과 남원 모두 30분 정도 거리에 있습니다.
실상사가 걸어서 15분에 있고, 지리산 둘레길 3코스 중간 쯤에 있어서 둘레꾼 손님이 많습니다.
뱀사골은 차타고 20분 걸리고, 천왕봉 가는 당일치기 코스 중 하나인 백무동까지도 버스로 30분가량 걸립니다.
서울서 오는 법
동서울터미널에서 지리산 백무동행 버스를 탄다. 이 버스는 함양, 인월을 거쳐 실상사, 마천, 백무동에서 내리므로
티켓을 살 때는 마천행까지 끊고, 내릴 땐 실상사 앞에서 내린다.
실상사에서 내려서 뒤로 돌아 산내면사무소 앞까지 쭉 걸어오면 15분. 면사무소 조금 못 가 길 건너 편 '유정가든' 간판이 있는 공터가 감꽃홍시.
게스트하우스가 있는 산내면 다운타운 ㅎ
집 앞 도로. 태양초 고추 제조 중!
내려오기 전엔 산골짜기에 있는 집인 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 면사무소, 우체국, 초등학교, 농협, 새마을 금고 등등이 가까운 '다운타운'입니다. 허나 시골마을에서 다운타운이라 해도 ... 어둑어둑해지면 풀벌레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농촌마을이구요. 버스정류장이랑 편의 시설들이 가까이 있어서 편리합니다 .
2. 집 + 주인
쥔장이 등본을 뗐을 때 1937년으로 기록돼 있었다고 합니다. 70년도 넘은 집인 셈이죠. 흙집에 기와를 얹었지만 이번 태풍에 끄떡 없을 정도로 튼튼했습니다. 솜씨 좋으신 주인장의 아버지께서 직접 마루를 닦고, 덧문을 달고, 화장실을 만드시고, 가족방과 문간방까지 만드셨대요.
- 대문과 마당
문패가 달린 대문
흙담을 끼고 대문을 여세요
가장 좋아하는 풍경. 텃밭을 바라보며 평상에 앉아있으면, 이태백이 부럽지 않아요.
이 텃밭은 한 달 내내 쌀과 계란 밖에 없을 뻔 했던 나의 식탁을 풍성하게 해 줬어요. 갓 딴 깻잎과 청양고추를 넣은 '그린 너구리' 라면 드셔보셨나요? 감자와 토마토를 잘라 넣고 계란을 풀은 거대한 오믈렛으로 아침상을 차리고, 가지에 소금만 쳐서 볶아도 김치볶음밥에 좋은 반찬이 생겼습니다.
주인장이 열심히 키우는 채소들이니 아무거나 함부로 따먹으면 안되지만, 푸성귀가 나는 계절에는 텃밭채소를 먹어도 된다고 하셨으니 적당히, 즐겁게, 감사히 먹었습니다. :)
집 구조는 본채 + 구들방 + 문간방 + 가족실 네 건물로 되어 있구요
빌려주는 방은 본채에 딸린 사랑방, 구들방 1 & 2, 문간방, 가족실이예요.
가격은 1인 기준 거의 2만원. 시민단체 활동가, 장기투숙자 대폭 할인!!!
자세한 설명은 쥔장 홈페이지 참조! http://plain0207.egloos.com/2856528
- Zone 1. 쥔장이 살고있는 본채
쥔장이 만든 조각보
쥔장과 함께 간혹 차나 술을 홀짝였던 본채 주방 겸 거실. 책은 빌려서 보셔도 됩니다~
세네명 너끈히 잘 수 있는 사랑채. 아이 있는 부부가 자면 좋을 것 같아요.
- Zone 2. 구들방이 있는 부엌
나의 구들방 앞. 마루에 앉아 멍때리고, 라디오 듣고, 책 읽고, 차 마시고....
구들방에 공주 스탠드. 참 안어울리지만.. 좋아 보이지 않나요?
TV를 안 본지 한달이 됐습니다. 밤에 밖에 나가 본 적도 없구요. 하지만 고요한 이 시간이 기다려졌어요.
아무 것도 더 필요한 게 없던 주방. 냄비, 그릇, 수저, 후라이팬, 칼, 전기밥솥, 냉장고... 다 있어요.
그러니 일회용품 가져오지 마시라는 당부!
아버지께서 대나무 하나 하나 쪼개서 만드셨다는 티 룸
비가 많이 와서 꿉꿉한 날은 아궁이에 불을 때서 방을 따땃하게 말려줍니다.
여기에 호일에 싼 감자를 투입, 버터를 발라 먹었는데 그 맛은!
- Zone 3. 문간방이 있는 뒷뜰
문간방은 독립된 건물이예요. 쥔장 홈피에서 가져온 사진
문간방이 있는 뒷뜰엔 공용 욕실과 든든한 파수꾼 강아지 보리가 있어요.
순하기 짝이 없는 보리지만, 담 넘어 인기척이 들리면 컹컹 짖습니다. 든든한 뇨속!
- Zone 4. 앞뜰과 가족실
텃밭을 사이에 두고 본채와 마주보고 있는 '신축' 가족실.
주방, 침실, 독립된 화장실도 딸려있어요.
3. 동네에서 뭘 하나?
한 달동안이나 시골에 있으면 심심하지 않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간간히 썼던 저의 날적이를 보면 아시겠지만..
심심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딱히 어딜 많이 다니지도 않았어요.
그냥 농촌마을이었으면 지루했을 것 같은데, 이 동네는 뭐랄까.. TOP. 분명히 그렇습니다.
- 산책
눈 뜨면 온 동네가 산책로죠 뭐. ㅎㅎ
집 뒤에 '람천'이란 하천이 흘러요
실상사까지 뚝방길을 따라 걸어가면 20분, 자전거는 5분. 매일 이 길을 몇 번씩 걸었어요.
실상사 가는 제방 길
구름이 산에 자욱히 걸려있는 이른 아침. 눈 뜨면 죄~다 이런 풍경이라는 거.
실상사 가는 또 하나의 길은 나지막한 언덕을 넘어가는 길이예요. 입석마을을 끼고 솔밭을 지나 실상사 앞까지 이릅니다. 약 20분.
에, 또 자전거 타고 물가에 가서 발 담그기~(왕복 10분)
중황마을 다랑이논도 보고 실상사 작은학교 구경하기~(왕복 한시간?)
산책 할 덴 많아요!
- 마을 도서관에서 책을 읽어요
산내초등학교 뒷편에 있는 마을도서관에는 깜짝 놀랄만큼 좋은 책이 많습니다! 네이버랑 작은도서관을 지원하는 단체에서 많이 후원했나봐요.
서울에 있는 구립도서관이었다면 100% 대출중, 예약중이었을 인기 소설들이 그대로 꽂혀있어요. 저는 가져간 책 다 못읽고 도서관에 있는 책들만 죄다 읽다가 왔어요. 오래 머문다고 말씀 드리고 대출회원 됐습니다. ㅎㅎ 평일 오후 3시~7시, 토요일 오전 9시~오후1시까지 운영.
- 지리산 둘레길 3코스 걷기
지리산 둘레길 3코스 인월~금계 구간 중간에 산내면이 위치해 있습니다. 시범코스로 만들어서 제일 공들여 만들었다네요. 그래선지 제일 유명합니다. 1박2일이 찾아오고 난 뒤 난리가 났다죠. ㅎ
주황색이 3코스
인월에서 산내까지 3시간, 산내에서 금계까지 4시간. 그러니 산내에서 딱 잘라 자고 가도 좋겠지요.
인월 - 산내 사이에 있는 중군마을. 벽화가 예쁩니다.
산내서 인월까지 걸어갔다가, 인월 목욕탕에서 푸욱 몸을 담그면 피로가 싹 풀리죠. ㅎㅎ
상황마을 다랑이 논. 1박2일에서 헬기가 훓었대요.
다랑이논도 멋지지만, 하황 중황 상황마을은 아늑하고 예뻐요.
인월 - 금계 사이에 창원마을 초입. 과수원 주인이 길손들 쉬어가라고 원두막을 지어 놨어요.
맞은편 구름 속에 있는 봉우리가 천왕봉이랍니다.
금계에 내려오면 카페 나마스테에서 버스시간도 묻고, 팥빙수 한 그릇 비우니 좋더군요
- 지리산 뱀사골 계곡물에 발 담그기
산내초등학교 앞에서 뱀사골 가는 버스가 하루에 몇 대 있습니다. 버스 타면 20분만에 뱀사골 입구에 도착해요.
뱀사골은 계곡 따라 산책로가 나무데크로 만들어져서, 등산 싫어하는 분들도 편안하게 한시간 산책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산책로가 끝나면 계곡을 따라 화개재까지 올라가도 돼요. 거기서 종주 시작하는 분들도 있어요.
뱀사골 초입 2km가량은 나무데크가 설치돼 걷기 편합니다
계곡물에 발 담그고 소설을 읽었습니다. ㅎㅎ
내려와선 버스를 기다리며 입구에 있는 식당에서 산채백반 정식 한 상! 1인분에 9000원,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반찬이 많이 나왔어요. 먹고 남은 건 비닐 달라고 해서 싸 와서 숙소에서 비빔밥 해 먹었습니다.
매콤한 버섯탕이 독특했어요
- 장터목에서 구름 바라보며 맥주 마시기
지리산 꼭대기 천왕봉 가는 현관, 장터목. 장터목의 비경도 훌륭해서, 굳이 천왕봉까지 안가도 된다고 생각.
백무동 - 장터목 왕복코스는 7시간 정도 걸려요. 올라갈 때 4시간, 내려올 때 3시간.
아침 일찍 백무동 가는 버스를 타고 8시부터 산행을 시작했습니다. 장터목에 도착해 맥주 한 잔 캬 -
좋은 경치보고, 하루종일 운동하고 숙소에 돌아오면 잠도 푹푹 잘 옵니다.
- 맛보기
산내면 유일의 치킨집 '계동치킨'. 프랜차이즈 내고 싶은 맛. 아아아아 -
읍내 '살래국수'에서 산나물 물국수와 오미자 비빔국수. 깔끔하고 맛있어요. 컵떡볶이와 순대를 파는데, 저녁 6시까지만 엽니다
실상사 맞은편에 있는 고즈넉한 카페 '소풍'. 팥빙수가 모양도 예쁘고 맛도 좋아요. 핸드드립 커피가 맛있답니다.
- 전통시장 구경
산내 인근 마을에는 5일장이 열려요.
함양은 2일/7일, 인월은 3일/8일, 남원에서도 열린다고 하네요.
장터구경을 가면 장터명물 국밥을 먹어야죠! 함양시장은 피순대국밥이 유명한가봐요. 무시무시한 이름과 달리 말간 국물에 깔끔한 국밥이 맛있었습니다.
함양 피순대국밥
함양장터
인월장 명물 보리밥집. 뷔페타입입니다. 10여가지 나물이 맛깔스럽고, 갈치속젓이랑 강된장, 비빔고추장 그리고 에피타이저 팥죽과 후식 식혜를 죄다 포함해 5천원이라는 놀라운 실속 비빔밥.
- 동네 문화공간 찾아 댕기기
독특한 동네예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모인만큼 행사도 모임도 많습니다. 실상사랑 한살림에서 하는 여러가지 행사도 있고, 삼삼오오 모여 환경잡지 읽기 모임이나 오카리나 배우기 등등 문화활동도 많이한대요. 여행자가 참여할 수 있는 행사도 분명 있습니다. 동네에 붙어있는 포스터가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Gogo~
오카리나 연주자 한태주와 아버지 한치영씨가 여름 한 철 열었던 숲속 음악회. 그 감동은.. ㅠㅠ
여성농민회에서 상영하는 <두개의 문>, 한생명에서 하는(듯한) 협동조합 강좌
둘레길 3코스 중간, 인월에서 산내 사이에 있는 히말라야카페. 라시도 판답니다.
그 밖에도 일요일 실상사 법회도 참석하고, 지나가다가 논밭에 일손도 거들어 드릴 수도 있고요.
면 한 가운데 통나무로 지은 '지리산 문화공간'도 곧 개관할 거라고 하니 기대기대. 만화책을 잔뜩 갖다놓고, 차도 마시고 얘기도 할 공간으로 쓰인다니 참새 방앗간 하나 더 생기겠군요.
5. 몇가지 경고
여기까지 파라다이스로 보이는 산내면과 감꽃홍시.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낄 수 있습니다.
"인터넷도 안되고, 롯데리아도 없는 촌구석 심심해!"라고 느낄 도시남녀분. 해운대 콘도로 놀러가세요.
다리가 여러개 달린 생물을 보면 "꺄악-"하고 기절하는 분들.
이 곳에선 여러 생물이 함께 생활합니다. 저는 처음에 방 귀퉁이에 거미를 보고 깜짝 놀랐다가, 그냥 뒀더니 이 녀석이 고맙게도 모기를 먹어치우더군요. 그래서 그냥 두고 동거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파리, 모기, 곱등이, 나방.. 모두 도시에서 인간이 쫓아낸 생물과 함께 살아가는 경험에 익숙해 질 거예요. 초등학교 3학년 이래로 관찰하지 못한 신기한 생물도 볼 수 있고, '인간도 자연이구나'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죽어도 낯선 생물과는 동거할 수 없다면. 아쉽네요.
사람은 다 다르니까요.
비가 내린 후 종종 보이던 민달팽이 녀석
한달 휴가를 받아, 꼭 해외로 떠날 필요가 있나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어야만 여행일까요.
한 곳에 오래 머물러 그 곳의 생활에 푸욱~ 젖어보는 것도 무척 괜찮은 여행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지리산 게스트하우스에서 몸과 마음을 제대로 '힐링'했던 저는 이런 여행, 많은 분들께 추천하고 싶네요. :}
꼭 이곳이 아니라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