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노무현 대통령이 떠난 날

2009.05.23 토

    20:08


     

    살맛 안나는 한 주를 보낸 토요일, 죽을것 같은 몸을 끌고 출근했다. 오늘 휴일근무는 장연공부방 아이들과 명동으로 공연을 보는 '봉사활동' 이다.

     

    회사에서 나온 공연 티켓을 그저 전달했을 뿐인데, 처음 기차를 타고, 서울나들이를 하고, 공연을 관람하는 아이들을 위해 '기차타고 문화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정성껏 행사를 준비한 공부방선생님들께 감탄하였다.

     

    아이 25명과 어른 9명이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데, 모둠별로 나누어 나는 2학년 여자아이 5명을 맡아 '일일 선생님'이 되었다. 오랜만 들어보는 '샘'이라는 호칭. 오랜만에 잠시 센터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모둠명을 무얼로 지을까?'라고 하자, 아이들이 바로 '달팽이 조'로 짓자고 한다.

    이유는?  어제 내린 비에 나온 달팽이들이 예뻐서란다. 옆의 조는 '산봉우리 조' 란다.

    아이들이 도시아이들이라면 결코 나오지 않을 '자연'을 조이름으로 붙이다니, 아무것도 아닐 것에 나는 놀랐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조잘대고 나를 인터뷰하고 게임하자며 잠시도 나를 심심하게 두지 않았다. 게임과 대화에서 어떤 비합리도 없었기때문에 아홉살이지만 결코 '아이들이니까'라고 얼버무리고 넘어갈 수 없었다. 아이들은 '아이들'이 아니다.

     

    하루종일 아이들과 손맞잡고 줄을 지어 지하철을 타고 명동을 누비니 관광객이 된 것 처럼 서울이 새로웠다. 아이들은 처음 기차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명동을 걷고, 공연을 보았지만 결코 주눅들지도 않았고 어리광부리지도 않았다. 결코 '못됐다'는 생각이 드는 아이가 한 명도 없었다. 학원도 안다니고 게임도 안하지만 산골 동네에 하나밖에 없는 이 공부방덕분이 아닐까 하고, 이제까지 몇 번 드나들면서 가졌던 생각을 오늘 확신했다.

     

    "선생님 얼굴에는 왜 뿅뿅 구멍이 있어요?"

    "여드름자국이야"

    "여드름은 어떻게 하면 안나요?"

    "나중에 여드름비누로 잘 씻으면 돼."

    "여드름비누는 누구한테 물어보면 사요?"

    "엄마들은 다알아. 나중에 엄마한테 여쭤봐~"

    하니, 세 아이는 잠시 침묵.

    교선이는 "우리엄마는 필리핀 사람인데 알아요?"한다.

    "어느나라 사람이든 다 알지~" 라고 말하고나서, 아차, 실수했구나 싶었다. 대답이 없던 아이 셋은 엄마가 안계셨고, 교선이는 다문화가정이라고 한다.

     

    선생님이 나에게 알려주시길, 이렇게 당차고 건강한 아이들이 대부분 소설 한 편씩 쓸만한 가슴아픈 스토리를 갖고있다고 아이 한명 한명의 사연을 알려주셨다. 난 정말 깜짝 놀랐다.

     

    아, 내가 회사일이 힘겹고 앞으로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고 좌절하고 징징대는게 얼마나 나약한가..

     

     

    이날 헤어질 무렵, 서울역에서 호외가 뿌려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갑자기, 무슨 말인가....



    이런저런 복잡한 마음과 알 수 없는 힘을 얻고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