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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의 문과 나

지구별우군 2012. 7. 2. 17:03


2012.06.26 00:23
2009년 1월 19일 
나는 괴산에 있었다. 기공식이 있던 날이다. 행사가 끝나고 다들 거나하게 취했다. 술자리를 파하고 일찍 숙소에 들어가려고 했던 것 같다. 다음 날 분당으로 교육받으러 가야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서울(근처)에 간다고 들떴던 것 같다. 설렌 마음으로 잠들었을 때 그 일이 일어났다. 

1월 20일 아침 7시 경 용산 남일당 망루 위에서 사람 여섯명이 불 속에서 죽었다. 그날, 한 번쯤은 그 뉴스를 들었을 법 했을텐데도 좀처럼 생각이 나지 않는다. 며칠 뒤 연일 포털에 뜬 '용산' 기사를 보고 몇 번 흠칫 놀랐던 게 전부다. 용산. 용산이 설마 그 용산이 아니겠지. 우리 회사가 수주했다는, 단군이래 최대 규모의 사업. 우리 기수 채용이 많았던 게 용산 덕이란 말도 있었다. 2008년 가을 면접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우리 응시자들은 손에 떡 한상자씩을 받았다. 상자 겉면엔 ' 경축 용산 국제업무지구 수주'라고 씌여 있었다. 

내 일기장에 용산이 처음 등장한 건 2009년 8월 5일이었다. 신입사원으로 현장에 떨어져서 적응하느라고 힘겨워했던 기록만 잔뜩이다. '요즘 시국은 용산과 쌍용차 사태다...' 라고 써있다. 서울서 떨어진 산골에서 신문을 애써 챙겨보며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현장 일에만 매몰돼 있었다. 스물 일곱살 꿈 많던 내가 이 곳에서 전표만 치고 살아야 하냐고 매일매일 한숨섞인 일기를 써내려갔다. 그 뿐이었다. 용산은 저 멀리 서울에서 일어난 일이고 신문 지상에나 나오는 먼 얘기라고 생각했다. 



오늘 영화 '두개의 문'을 봤다. 
망루에 불길이 가득 차 결국 허물어지고 마는 모습을 보며 충격에 휩싸였다. 그 사건이 결코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걸 절감했기 때문이다. 

최근 한 진보언론사에서 면접을 봤다. 면접관이 내게 "삼성에서 일한 데 죄책감을 느껴 본 적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 질문에 동문서답했다. 그 질문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았다. 아마 대학시절 철거촌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는 자기소개서 내용이, 대기업 건설사에 간 내 이력과 어울리지 않아 내 정체성을 파악해 보려는 의도였을테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답을 피했다. 앞서 말했듯이 서울에서 멀리 떨어져 공사 현장에서 돈이나 세고 있는 말단 직원이, 죄책감을 느낄 만큼 회사의 큰 사안에 대해서 관심도 정보도 없었던 게 사실이다. 당장 눈 앞에 닥친 문제들을 헤쳐 나가기에도 급급했다. 무엇보다 회사란 조직에선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는 나약하고 착한 직원들이 있을 뿐이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갔다.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많이 변했다.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학교 다닐 땐 너무 쉽게 세상을, 강자를 비판했다. 대기업도, 정치인도 마음껏 비판했다. 막상 기업과 국회에 들어와 보니 '나쁜 사람'은 없었다. '나쁜 지도층'을 본 적도 없었다. 그저 성실하고 소심하게 복닥복닥 거리며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소시민들은 상부가 시킨 명령에 묻거나 따지지 않고 수행할 뿐이었다.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비판했던 대상을 이해하려 했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지만, 어쨌든 싫진 않았다. 세상을 더 알게 된 것 같아 만족스럽게 여겼다. 

동시에 '순백의 선인'을 꺼려하게 됐다. 강자와 권력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만 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너무 단순하게 본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영원히 약자 입장에 있다고 믿는 정의의 사도들이 솔직히 좀 꼰대같다는 생각도 했다. 너무 바른 말만 하는 진보 단체나 언론은 세상의 단면만 보는 것 같았다. "당신이 영원히 약자일 것 같으냐."고 묻고 싶기도 했다. 그래서 "죄책감을 느낀 적 없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느낀 당혹감은, 너무나 오랜만에 접해보는 '순백의 정의'에 대한 약간의 거부반응이기도 했다. 

영화 '두개의 문'에선 망루에 선 철거민 뿐 아니라 진압에 투입된 말단 경찰들도 피해자라고 강조했다. 풍부한 진압 경험을 가진 경찰도 빨리 작전을 완료하라는 상부의 지시 때문에, '이 상황에 망루에 올라가면 양 쪽 다 위험하다'라는 판단조차 입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뿐"이라고 말했다. 검찰도 마찬가지였다. 판사도 마찬가지다. 수사기록이나 채증자료 공개 같은 상식적인 절차마저 무시했다. 그들도 상부의 명령을 따랐을 뿐이다. 본인은 엘리트라고 생각할 지 몰라도, 양심이나 소신 없이 조직의 명령으로만 움직이는 그들은 '깡통' 에 불과했다. 

용산 덕에 채용되고, 많은 상여금을 받았으면서도 용산과 내가 상관 없다고 생각한 나도 뭐가 다를까. 영화를 보는 내내 그 생각이었다. 상부의 명령에 따라 손에 피를 묻힌 소시민들. 모두가 상부와 조직의 명령에 따랐을 뿐이라고 했던 그들을 보며 "죄책감을 느낀 적 없다"고 생각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좋은 동료, 착한 부하직원, 유능한 인재라는 소리를 듣고 싶어서, 사회에선 '건강한 상식선'의 입바른 소리마저 고르고 또 고르던 무기력한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게 싫었다.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고 나왔지만, 지금 나는 하나 달라진 게 없다. 

지도부는 '나쁜' 명령을, 부하직원은 층층이 내려가며 상관의 명령을 성실히 따를 뿐이다. 용산도 그랬고, 우리가 '봉사활동'을 하러 갔던 태안의 기름때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비난이나 책임같은 더러움 하나 타지 않았다. 

죄책감. '그럴 필요 없다'고 굳이 위로하고 싶진 않다. 
어느새 내가 멍청히 살고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나도 이성없는 깡통으로 자연스럽게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조금이나마 해롭지 않은 인간으로 살아보려면.. 지금 느낀 날카로운 죄책감을 가슴에 잘 품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