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튼을 내 마음에 들게 바꾸는 삶, 화병을 좋은 곳에 옮기는 삶
요즘 나더러 어떻게 사느냐고 누가 물으면
"서울서 시골 생활 하고 있다."고 대답하곤 했다.
서울에 살지만 산 밑에 살고, 마당과 대문이 있는 주택에 살고, 집에서 일터로 걸어서나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왠만해선 지하철을 잘 타지 않고, 한강 이남으론 갈 일이 없는. 백화점도, 마트도 잘 가지 않고, 가끔 종로에 나가는 정도의 시내 나들이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사람들도 내가 있는 동네 은평으로 종종 오곤 하니까, 나는 정말 로컬리티의 삶을 즐기고 있다.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재밌는 일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니 즐겁다. 다만 재밌는 일들은 많이 하는데 돈으로 보상을 받지 못하니 답답함이 컸다. 이 생활을 지속할 수 있을까 고민도 되고. 점점 바빠져서 올해 텃밭은 안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스웨덴서 갖고 온 귀한 씨앗이 3년만에 처음 발아해서 밭을 안 할 수가 없게 됐다.) '비즈니스 모델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해도 맥이 빠진다. 프리랜서이자 독립러로서 노동을 요즘처럼 많이 생각해 본 적이 없기에, 이런 글도 썼다. <노동을 노동이라 하지 못하는 독립러의 노동절>
조바심도 나고, 나와 우리의 경쟁력이 무엇일까도 고민해 봤다. '스타트업 바이블' 이란 책을 펼쳐놓고 자못 진지하게 탐독했다. "나 마케팅 하는 회사에서 일 해볼까?"라는 소리도 했다.
그러다 어제 아침, 팟캐스트 준비로 섭외 연락을 했다. 귀농한지 11년 된 언니였다. 자급농을 한다고 했다. 천천히, 나지막한 목소리로 "제가 주제에 맞는 인물인지 모르겠어요."라고 말씀하셨다.
농사 뿐 아니라 건강이나 뭐든지 자급하는 삶을 살려고 한다고 하셨다. 그러다가 "집에서 커텐도 내 마음대로 달 수 있고. 꽃병에 꽃도 내 마음에 들게 꽂아서 옮겨 놓을 수 있잖아요."라고 말씀하시는데, 그 얘기를 듣다가 왈칵 눈물이 났다.
'남들과 비교했을 때 나는 어느정도 있구나 - 를 확인해야 비로소 마음의 안정을 얻는 삶을 살고 있구나. 내가 만족할 만한 삶을 살고있는지가 아니라'를 문득 깨달은 것이다.
'이 바닥에서 이런 위치에 있으면, 나는 먹고 살 수 있을까?' '경쟁력을 갖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낮에 일하지 않아도 괜찮은 것인가?'라는 조바심 속에 살고 있다는 건,
이상하게 시골에 가거나 시골의 언니들과 이야기할 때 깨닫게 된다.
그런 게 아니라 -
커튼과 꽂을 나의 마음에 들게 잘 가꾸는 데서 오는 만족도 있다.
(이상하게 도시에서는 그런 마음을 자꾸 까먹곤 한다)
즐거움을 일이나 타인의 인정에서 찾게 되면 -, 그렇게 해서 즐거워 지면 못난 모습이 되기 십상이다. 세상의 어느 쯤에 나를 위치짓고, 내려다보거나 깔보거나하면서 자기 만족에 차게 되는 것 같다. 그렇게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 귀촌이란 세계가 나에게 열어준 세계관은,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도 온전하게 의미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알아서였다.
괜찮은 줄 알았는데, 괜찮지 않게 살고 있다는 거를
신기하게도 시골에 가서나, 시골의 언니들과 이야기하면서 깨닫게 된다.
도시의 속도에서는 그렇게 살아지기가 어려운가보다.
그래서 도시에서 살더라도, 시골과 시골 언니들과 끈을 절대 절대 놓지 않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