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시절기록

소환된 두개의 선

지구별우군 2018. 8. 16. 22:30

오늘 아침 태어나서 처음으로 임테기 두줄을 보았다.

생각보다 무덤덤했다. 

아이를 가지려고 노력을 안 한 게 아닌데

막상 두 줄을 보니, 

나를 귀찮게 할 것들이 먼저 떠올랐다. 


"아들을 낳아라."라고 일주일에 한 번씩 시어머니에게 전화해서 랩을 하고 끊으신다는 아흔 넘은 시할머니와

'홀몸 아니니 몸 조심 해라'거나 '애가 보고싶다'며 연락과 만남이 잦아질 시부모님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아이에게 세례를 받으라고 하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줄 두개를 보는 순간부터 떠오르다니. (결혼하고 첫 한 두 해는 교회에 가라는 시댁의 압박으로 괴로워했다.) 

자신이 아이를 쉽게 가졌으니 나에게도 아이를 가지라는 속모르는 덕담 아닌 덕담을 건네던 친구들과,

이사온 다음날 "애를 못 갖는 거야, 안 갖는 거야?"라고 물어보던 주인집 아저씨까지

가임기 결혼한 여성으로 사는 동안 내 몸과 내 삶에사람들은 허락도 없이 훅훅 침범했다. 


대학원 가려고 공부하던 텝스는 어떻게 할까?

남편은 장담하던 육아휴직을 정말로 쓸까?

귀촌은 가까워졌을까, 멀어졌을까? 

변화할 환경들도 혼란스럽다. 


정작 아이가 있어도 나는 씩씩하게 

아이와 함께 공부하고, 여행하고, 일하고 - 할 것 다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것보다는 주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네가 아이를 낳는 걸 봐야 눈을 감겠다"고 통화할 때마다 말씀하시는 시할머니

그분과 가까이 사는 남편의 사촌형네도 아이가 없다. 

그분의 아내 난소에 어떤 문제가 있고, 시험관이 몇 번 실패했는지를 밥상 머리에서 논하던 이들을 보며

'여성의 자궁은 공공재구나' 경악했던 기억도 잊히질 않는다. 


그런저런 생각들이 먼저 떠올라,

두개의 줄을 본 후 한 나절이 지났지만

정작 아기에 대한 생각이나 감정은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다. 


세대가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누군가를 돌보는 책임과 경험을 하고싶다는 마음은 기대가 된다. 

하지만 내 삶에 아이를 매개로 간섭하고 침범하는 이들이 늘어날거라는 두려움에

나는 오롯이 아이에 대한 감정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제기랄. 


'신과함께'의 세계관이라면

나는 자궁이 아주 남자네 집안 것이었던 엄혹한 시대에도 살았겠지?

세상은 조금 더 나아지고 있겠지? 

다음 생에는 오롯이 아이와 나, 우리만 생각해도 충분한 삶을 살 수 있겠지?

겁 내봤자 소용 없으니 그냥 씩씩하게 잘 살아보는 수밖에 없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