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에서, 살아남아야 합니다 - 무산일기
2011.04.24 일
박정범 감독이 직접 연기한 주인공 故 전승철씨는, 실제 감독의 지인이었다고 한다.
영화속 인물이지만, 전승철 씨를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전씨가 좋아한 여주인공. 배가고파 사람을 죽였노라는 전씨의 신앙고백을 듣고, 비호감에서 호감으로 급전환 한다. 이건, 동정심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데 정말 동정심일까? 그런 그녀에게 다가가기는 커녕, 묵묵부답으로 뒷걸음질 치는 주인공은 여자의 호의가 동정심때문이라고 생각해서일까?
약삭빠르게 남한 사회에서 경제적으로 자리를 잡은 주인공의 동거남 친구. 그가 비싼 나이키 점퍼를 사 주면서 바지도 없는 주인공을 위해 한벌 '슬쩍' 해 온걸 입으라고 하자 주인공은 '그럴 수 없다'며 도로 돌려주고 오겠다고 실강이를 벌이지. 주인공은 마치 '배고파도 빵을 훔치면 안돼요'라며 원칙을 따지는 초등학생의 도덕 답안지 같이 행동한다. 아, 답답해. 훔친 걸 매장에 갖다 주면 도둑놈으로밖에 더 봐? 거기다가 그렇게라도 챙겨준 친구는 뭐가 되는데?
글고, 노래방에서도 도우미 가슴을 더듬는 남자에게 괜히 참견했다가 어렵게 구한 일 짤리기나 하지. 여자도 돈 받고 싫은 내색 안하는데 괜히 왜 끼어들어 일을 어렵게 만드니? 아.. 좀 니 밥그릇은 니가 챙기고 살아라.
- 이런 생각으로 시종일관 주인공을 안타깝게 쳐다보던 나는... 벌써 자본에 찌든건가;;;
난, 거리에 뿌려진 키스방, 유사성매매 전단지 완존 짜증냈다. 이런거 왜 단속 안하냐고 경찰청에 묻기도 하고 처벌을 강화하도록 법을 만들어 보려고도 했었지. 그런데 이렇게 단속도 있고 위험한 일일수록 가장 약한 사람들, 가장 낮은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들이 하는구나.. 생각이 드니까.....뿌리는 사람 대신, 역시 업주들을 처벌해야해! ;; & 길거리에 붙어있는 포스터와 현수막이 다시 보인다. 저걸 붙여야 했을 가장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사람들이.. 있었구나.
나는, 사회의 안락한 테두리 안에 있긴 하구나.. 그게 확실하구나. 하고 확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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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당신들이 하는 노력이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좋은 학점을 따기 위해, 더 좋은 영어점수를 받기 위해 하는 노력이 다 헛것이 될 수 있습니다.
대신 당신만의 특기와 가능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그들은 당신 이력서의 대학이름따위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듣보잡'일테니까요. 오직 당신의 창작물로 당신을 평가합니다. 고졸로 동대문 옷장사에서 시작해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된 최범석씨는 "그들은 나에게 아무도 어느 학교를 나왔냐고 묻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당신이 지금 목숨을 걸고 얻으려는 그 타이틀은, 사실 안온한 한국사회에서만 유효합니다.
이런 사례는 한국 안에서도 아주 흔합니다. 북에서 오랫동안 저명한 의사로 활동해오던 탈북동포는 남한에서 그 의사 자격증을 활용할 수 없습니다. 북에서 명망높은 학자도 남에 내려오면 강사료 몇 십 만원을 받고, 북한의 열악한 인권 실태를 토로하는 안보교육 강사로 팔려갑니다.
이주노동자와 결혼이민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속에서 생존해야 합니다. 그를 위한 전략을 다시 짜야 합니다.
나라를 떠나면, 이제까지 고이고이 쌓아 온 모든 것도 놔두고 와야 한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하는 나라의 사람들이 있다.
미국에서 딴 학위로 한국에서 먹고사는 덴 지장이 없지만,
북한에서 얻은 이웃의 애정과 관심과 경험과 인맥, 그리고 그들이 길러준 좋은 품성도
남한에 오면 한갓 '루저의 자질'로 전락하고 말았다.
주인공은 품성이 곱디 고운 사람이다. 남에게 피해 줄 줄 모르고, 옳은 대로 행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를 길러준 공동체는 그렇게 가르쳤으리라.
포스터의 장면이 중요하다.
바른사나이었던 그가 생존을 위해 배신이란 걸 때리는 첫 장면이다.
영화의 주제다. 많은 사람에게는 삶의 화두일 것이다. '어떤 사회가 개인의 심성을 악독하게 혹은 선하게 만드는가'
경쟁사회의 논리가 거짓말을 가르친다고 한다. 최근 초등학교에서 일제고사 시간에, 교사들이 제자들에게 컨닝하는 법을 알려주기도, 부정행위를 눈감아주기도 했다고 한다. 어느 네티즌(학생인듯)은 "그 학교는 윤리시간에 뭘 가르쳐도 안먹히겠군요."라고 트위터에 댓글을 달았다. 공감이다.
그렇다고 핑계를 대진 말자. 각박한 사회에서도 올곧게 살 수 있다. 그렇게 살아야 맞는 거다. 윤리시간엔 그렇게 가르치는 게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