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한달] 5. 금슬좋은 부부
2012. 8. 17
옆방에 부산에서 오신 60대 부부가 묵고 계신다.
본인들이 묵으실 방을 보자마자 "와~"하고 탄성을 지르셨다. "요즘도 이런 구들방이 있네요. 호호호 " 하면서 두 분은 어찌보면 '누추할' 방인데도 옛날 생각 난다며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커피를 한 잔 타도 나눠마시고, 서로에게 존칭을 쓰며 (사투리인데도!), 설겆이는 아저씨께서 하시는(경상도 사나이신데도!) 금슬 좋은 부부 모습이 신기해서 나는 그들을 '원앙부부'라고 혼자 이름붙였다. 두분은 새벽부터 차 한잔을 나눠마시고 동네 산책을 나섰다. 그리고 밤에는 별을 함께 보러 가자고 기대에 잔뜩 부풀어 계셨다.
"별 보면 나 따 줄거예요? " 라고 아주머니가 우스갯소리를 건네자
"따 줘야지."라고 아저씨가 빙긋 웃으며 답하셨다. 참 보기 좋았다.
함양시장
주인 언니를 따라 함양에 갔다. 오늘이 장날이라고 한다. 장에는 씨앗을 파는 아주머니들 주위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있었다. 이제 곧 김장을 할 재료인 배추나 무 파종에 들어간다고 한다.
장에 오면 장터에서 가장 '잘 나가 보이는'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을까? 한 바퀴 돌고 보니 '피순대 원조'라고 커다랗게 써 있는 집에 사람이 많았다. 1인분인데도 반찬까지 푸짐했다. 이름은 '피순대'인데 순대도 깔끔하고 국물도 맑고 칼칼했다.
함양도서관에 들렀다. 읍 단위 도서관치고 사람도, 책도 많았다. 볼만한 신간이 잘 갖춰져있다고 주인언니가 말한 대로 서울 여느 구립도서관에 못지 않게 책이 알찼다.
서가도, 사람도 휑하던 괴산읍내 도서관이 생각나 마음이 아팠다.
이런 곳이 많이 생긴다면 아무리 세금을 많이 내도 아깝지 않다.
하루에 걸쳐 <은교>를 읽었다. 소설에 장치와 반전이 이어져 이야기를 잡아끄는 힘은 있다. 읽기 쉬운 문체와 눈을 잡아끄는 감각적인 표현도 책장을 술술 넘기게 했다. 물론 '늙음'에 대해 새롭게 생각하게 하고, 평단에 좌지우지되는 문단의 가식에 대한 질타.. 같은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 주었으나. 읽기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소녀에 대한 나이든 남자들의 '자기위주' '욕구 분출' 밖에 되지 않는다고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미화시키려 해도, 마초는. 마초였다.
은교의 입장에서 여성작가가 글을 쓴다면 전혀 다른 글이 나올 거란 확신을 한다. <냉정과 열정사이>처럼 같은 이야기를 다른 시선으로 써 봐도 재밌었겠다 상상했다.
*
저녁에 금슬좋은 부부의 딸 내외도 숙소로 왔다. 신혼이라는 딸 내외도 부모님 부부처럼 금슬이 좋았다. 신부를 번쩍 업어 마당을 거니는 모습이 포착, 부러움을 샀다. 가족은 많이 닮는가보다.
단체 워크숍을 온듯한 손님들이 김치전을 내왔다. 금슬좋은 부부네가 물 많은 황도복숭아를 주셨다. 주인언니와 그 귀한 '벡스 다크' 맥주를 마시면서 재미나게 사는 사람들 이야기를 나눴다.
힘을 많이 주는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