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안 한 내탓이야' 라고 말하기만 하는 '멘붕 소사이어티'
2012.10.25
청년유니온 지역모임에 갔습니다.
한달에 한번 인근 세개 구에서 온 조합원들이 모이는데, 세 번째 만남이라 처음 보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샐러드 만들다 왔어요."
일을 마치고 헐레벌떡 뛰어왔다는 뽀얀 얼굴빛의 여자분이 자리에 앉자마자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습니다.
"제가 서울에 온 지 몇 년 됐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랑 앉아서 얘기나누는 건 처음이예요." 라고 말문을 튼 그녀는
그동안 주방에서 일하며 겪은 '착취'에 대해 너무나도 말하고 싶었다 합니다.
"그 분은 텔레비전에도 자주 나오던, 유명한 한식 요리사예요."
우리 음식을 제대로 배워보겠다고 고향에서 학교도 조기졸업 한 채 상경했던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요리사가 운영하는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삼년인가 사년동안 그녀가 겪은 건 '배움'이나 '전수'도 아니고, 그렇다고 일한만큼 보수도 받았던 '노동'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바닥부터 시작하는 거야.'라는 그들의 말에 '언젠가는 가르쳐 주겠지'라는 마음으로 참길 몇 년.
이건 분명히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말했지만, 같이 일하는 동료나 친구들, 심지어 남자친구도 '왜 그런 말을 하지? 원래 그런 거 아니냐. 우리가 더 열심히 해야 한다'고만 했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서른을 넘겨 몸이 다 망가진 채 일을 그만두는 선배들을 보며 그녀는 여기서는 미래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벽을 보고 말하는 것 같았다고 합니다.
그녀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전부 '우리는 잠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다' '내가 열심히 안해서 이런 거다'라고 했답니다. 분명 우리나라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요리사인데, 텔레비전에 나와서 저렇게 고상하고 우아하게 말하는 사람인데, 자기 밑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제대로 보상도 하지 않으며 '가르침'을 빌미로 착취한다는 걸 견딜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 곳에 와서 처음으로 '이해받았다'며 눈물을 글썽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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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 사람들의 이해하지 못하는 눈길을 받을 때마다 책하고 얘기했다고 합니다.
그녀에게는 이해가지 않는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구미에서 그렇게 엄청난 일이 일어났는데, 아무 일 없는 것처럼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건 뭐죠?
아이들이 떨어져 죽고 있는데, 그렇게 아파하고 있는데 이렇게 무덤덤할 수 있는 사회가 무서워요."
아, 정말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싸이랑 김장훈이 싸웠다가 헤어지는 걸 며칠동안 중계받아야 했던 이 천박한 미디어는 뭔가요.
클릭 수 많은 기사, 리트윗 많은 기사.. 이런 기사 에디팅 방식이 새로운 게이트키핑으로 각광받고,
좋아요에 트윗에 댓글에 ... 너무너무 많은 정보가 넘쳐나서
정작 뭐가 중요한 지 알 수 없고
고통받는 사람의 절규는 '좋아요' '트윗' '클릭'에 묻혀버리니.
신문 기사에서 읽었던, 바우만이 말한 대로 '너무 많은 가짜 소통'이라는 수용소가 떠올랐다.
통제할 수 없는 현재와 무엇이 닥쳐올지 모르는 미래에 대한 공포로부터 달아나는 동시에 자신의 자유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지난한 노력 속에서 사람들은 더욱 더 표면적인 것, 더 즉각적인 것에 몰두한다. 그것들은 원하기만 한다면 언제든지 빠져나올 수 있는 부담 없는 임시 정박지와 같다. 예를 들어 살아갈수록 정작 속내를 털어 놓을 만한 친구의 숫자는 줄어드는데 트위터의 팔로워와 페이스북의 친구가 늘어가는 것에 우리는 흐뭇해한다. 하지만 이 만족감은 오래 가지 못한다. '리트윗'과 '좋아요' 버튼을 클릭할 때, 우리는 수백, 수천 명과 소통하는 것 같지만 사실 이 때의 소통이란 '액션'이 아니라 '리액션'의 연쇄에 하나의 고리를 덧붙이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 따라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소통이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이러한 '유사 소통'의 폐쇄 회로에 갇힌 상태에서 불만족으로의 급락을 다시 만족으로 끌어올리는 해결책이 있다면, 그것은 예전보다 더, 더, 더 많은 클릭을 주고받는 일 뿐이다(주식 시장에서 개미들이 보이는 기민함처럼). 그리고 이런 클릭질의 교환이 결코 끝을 맺지 않는다는 점에서 해결책은 언제나 임시적일 뿐 본질적으로 무용하고 심지어 더 해롭기까지 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과정에서 더 중요한 것을 상실한다.
"결국 외로움으로부터 멀리 도망쳐나가는 바로 그 길 위에서 당신은 고독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린다. 놓친 그 고독은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생각을 집중하게 해서' 신중하게 하고 반성하게 하며 창조할 수 있게 하고 더 나아가 최종적으로는 인간끼리의 의사소통에 의미와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숭고한 조건이기도 하다."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31쪽)
출처 : 프레시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20921151037
거대한 수용소에 갇힌 사람들 "응답하라, 희망이여!"
[사회학을 전복한 사회학자]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심보선 시인
무언가를 꼭 하고 싶다는 그녀와 함께
주말에 그녀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는 곳에 가기로 했다.
"제가 이상한가요?" 개콘 멘붕스쿨 대사 만이 아니다. 멘붕, 멘붕, 멘붕 소사이어티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