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원더랜드 익산의 길 잃은 걸리버

지구별우군 2012. 11. 26. 00:26

2012.11.19


앞으로 몇 번 익산에 갈 일이 생겼다. 

지난 19일,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익산이란 곳에 갔는데, 한 마디로 '어떤 곳이다'라고 말하기가 어려웠다. 

반나절 동안 움직이면서, 계속 새로운 모습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익산 구도심 -> 신도시-> 구도시 순서로 보고 나니, 퍽 다양한 얼굴을 가졌구나 란 생각이 들었다. 


그럼 간단한 스케치를. 



익산역에 내려서 본 시내는 참 황량했다. 

역 공사를 하고 있어서 더 그런 모양이다. 마땅한 식당도, 시장도 없어 보여서 지도를 찾아보다가

택시를 타고 아저씨에게 '맛있는 데를 데려다 주세요' 라고 말씀드렸더니

고심고심 하시면서 내려다 주셨다. 

"그냥 백반이예요. 반찬 가짓수가 좀 많은."

... 

1인분 5,500원에 반찬이 열 아홉가지, 거기다 찌개와 계란찜이 나왔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테이블마다 사열하고 있는(?) 반찬들.

곧 밀려 들이닥칠 '병사'들을 맞이해 전투 준비를 마친 비장함이 서려있다.;; 

정말로 12시 5분 전쯤 되자, 병사들이 군홧발(?)로 몰려들었다. 

근처 건설현장이 많은가보다. 즉, 이곳은 함바식당인 듯. 

함바가 이렇게 맛있다면.... 정말 일하시는 분 사기가 200%충전할 듯. 예전 현장에서 함바식당 맛없어서 엄청나게 항의를 받았던 일이 생각난다. 음. 분명, 함바식당과 건축물의 내구성 및 완성도에는 큰 상관관계가 있을거란 확신이 있다. 




결정적으로 식당 간판을 안찍었네. '낙원식당' 이었다. 익산에 사는 사람은 다 안다는. 


밥을 먹고 조금 나오니 '중앙체육공원'이란 곳이 나왔다. 

공원 초입에 이런 꼬마 바이킹과 미니 회전목마가 멈춰 있었다. 너무 귀여워서 큭큭큭. 



그 때까지 역앞의 황량함에 당혹했던 우리에게 이 쓸쓸한 놀이기구는 다시한번 당혹감을 안겨줬다. 

기구를 타고 싶으면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어야 하는 듯 했다. 허허. 

바이킹 끝에 매달려있는 저 신밧드는 어디서 온걸까. 너 참, 만리 타향에서 외롭겠구나.



목적지인 부송동으로 향했다. 오오, 이런. 이제까지 황량함이 사라지고 서울의 여느 신도시처럼 아파트와 학교, 마트가 잔뜩 등장했다. 듣자하니 역 앞은 구도심이고, 부송동 쪽이 신흥 주거지라고 한다.



부송동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서 야채를 파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흩날리는 은행잎에 파묻힌 당근이 재밌어서 카메라를 들이댔더니, '난 찍지마요'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아...아주머니 찍어드릴 걸 그랬나봐요. 여쭤보지도 않아 죄송. 



목적지인 시립 부송도서관. 익산의 명승지인 미륵사지 석탑을 형상화 한 모형 탑이 있는데, 책으로 만들었다! 

북카페도 굉장히 잘 갖춰져 있고, 영화상영 목록에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가 있어서 깜짝 놀랐다. 오호라. 익산의 도서관에서 베를린 영화제 금공상 수상작을 볼 수 있다니. 젊고 세련된 곳이구나.. 


라고 생각하고 나서 다시 익산시청을 지나 역으로 가니, 처음의 황량한 느낌이 사라졌다. 

차를 타기까지 시간이 좀 남아, 익산 역사 주변을 어슬렁 돌아다니니 추모비나 탑이 많았다. 

아! 이곳이 '이리역 기차사고'가 있었던 이리구나. 그리고 6.25때 미군의 폭격으로 민간인 희생이 컸던 곳이라고도 한다. 여러모로 아픔이 많은 곳이구나. 그러고보니 '이리'라는 영화도 있다. 식민지 시대 군산 가까이에서 일제 수탈도 심했고, 전쟁때 피해도 컸던 곳이고, 거기다가 대규모의 열차 폭파사건까지 겪었다니. 이제 익산역이 깊은 아픔을 숨기고 있는 '사연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 


한달 간 종종 오게 될텐데, 좀 더 여러 면을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