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빌라 앞 눈은 누가 치울까?
집에 들어가는 길에 할머니랑 할아버지가 설전중이셨다.
우리골목에서 나오는 폐지를 수거하는 할머니랑, 이웃 빌라에 사는 할아버지가 무슨 주제로인지 얘기하시다가,
할아버지가 "지난 겨울에 이 골목 눈은 내가 다 쓸었다고!" 라고 하시니까 할머니가,
"무슨, 한번 한 걸 가지고 뭘 그러샤." 하셨다.
음.. 그러고보니 지난 겨울에, 눈이 내리면 누가 치우나 궁금했었다.
나를 포함한 젊은 사람들은 아침에 눈 쓰는 일이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 출근하려고 보면, 동네 할아버지들이 나오셔서 눈을 치우시는 걸 많이 봤다.
'맞아. 내집 앞 눈은 내가 쓸어야 한댔지.' 이제까지 아파트에만 살다가 빌라로 이사와서 처음 겨울을 보내면서, 눈을 쓸어야 하는데 막상 쓰는 게 익숙치 않아서 망설이곤 했더랬다.
눈 뿐만이 아니다.
아파트에 살 때는 관리실과 경비실 몫이라, 생각치도 않았던 것들이
관리실이 없는 빌라로 오니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이사와서 분리수거는 어떻게 하는지, 쓰레기는 어떻게 버려야 하는지. 관리실이 없으니, 이웃집 문을 두드리고 여쭤봐서 알아보게 됐다.
제일 신기했던 건 상하수도요금이랑 계단청소비용 정산인데, 두달마다 한번 씩 집 문앞에 "이번 달에 이만큼 썼으니, 각자 얼마씩 몇호 누구네 계좌로 보내주세요. 다음 달은 몇 호가 정산할 차례입니다." 이렇게 종이가 붙어있었다.
얼마 전엔 1층 현관에 쪽지가 붙어있었는데, "어제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어요. 창문을 열어놨더니 배관을 타고 올라왔나봐요. 모두 문단속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라고 이백이호 어르신이 쓰신 노트였다. 우리도 깜짝 놀라서 그 다음부터 문단속을 더 열심히 하게 됐는데, 도둑이 들어서 경황이 없는 중에도 이웃들 조심하라고 알려주신 게 고마웠다. '감사하다'고 답이라도 달아야겠다 마음먹었는데 미루다보니 표현을 못했다.
관리실이 없으니 불편하기도 하지만, 이웃간에 '부득이하게' 필요에 의해 교류하게 되니 신기하고 따뜻하다.
요즘 마을만들기도 일부러 하는데
관리하는 사람이 따로 없는 연립이나 빌라, 골목 동네에선 소통할 여지가 더 많을 수 있는 것 같다.
우리 골목 생태계 같은 걸 조사해볼까. 하는 생각도 들고.
여튼, 이번 겨울에는 눈 치우는 도구 사가지고, 휴일에라도 촘 쓸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