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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력'

얼마전, 젤로 좋아하는 지역 두 곳에서 좋아하는 사람들을 무더기로 만날 수 있었던 행사에 다녀왔다.

그  여행에서 '동료'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깊이, 여러 사람과 나누었다.


"동료가 필요해." 지난 1년 외치고 다닌 말이다. 외롭거니와, 가고 싶은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려면 동료가 있어야 하니까. 연결되어야 강하지. 응, 응.
마음 통하는 좋은 이들이 많지만 함께 손 잡고 갈 동료가 되는 건 참으로 쉽지 않다. 너무 손 꽉 잡지 않아도 적당히 '따로 또 같이' 하는 방법은 없을깐. 그런 물음을 안고
"어떻게 동료가 되나요?", "어떻게 좋은 동료 관계를 유지할 수 있나요?" 라고 물었다. 이에 답해주었던 이들의 주옥같은 멘트를 적어본다.


- 지향뿐 아니라 처지가 같아야 동료가 되더라.

- 나 혼자 다 하려 하면 동료를 만들 수 없다.
- 8할만 하려 해야 동료를 볼 여유가 생긴다. 너무 백프로 이상 열심히 일하려고 하지 말아요.
- 조직에서 나온다고 동료가 없어지는 게 아니더라. 일을 그만두니 오히려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드러났다. 그만 둔 직장에서, 일하면서 맺었던 많은 관계가 동료로 재구성 되었다.
- '일의 동료'뿐 아니라 '삶의 동료'도 중요하다. 노년기에 삶의 동료가 많은 삶이 얼마나 풍요로울까?

- 인정 욕구와 신뢰.
신뢰가 깨지면 동료력이 바닥난다. 많은 사람들이 신뢰를 깨뜨리는 녀석으로 인정욕구를 들었다. 그런데 인정욕구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고생한 나를 인정하는 건 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필요하니까. 나의 인정 욕구도 잘 보살피고, 남의 인정 욕구도 존중해야지. 


기실 비극의 시작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인정받아야 한다'는 분별에서 비롯된다. 다른 사람의 지향을 함부로 재단하고, 내가 더 가치있는 일을, 더 많이, 더 열심히, 더 잘 했다고 느낄 때. 더 인정받아야 한다 생각할 때 신뢰가 깨진다. (누가 그래 하랬나?)

사이가 좋을 땐 팥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꺄르르 하다가도, 
신뢰가 깨지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 해도 의심하더라.

신뢰가 깨진 동료와 일하는 건 지옥같지.
그리고 아주 빠지기 쉬운 함정이지. 누구든 그럴 수 있지. 나도.

그래서 쓸 데 없이 너무 열심히 하지 말라고.
그리고 '인정 투쟁' 대신 '인정 나눔'을 하자고 말했다. 좀 오글거리더라도, 만나면 "네가 있어서 나는 혼자 하지 못할 걸 했어."라고. 헤어질 때 "나도, 너도 수고했어."라고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