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 노약자와 임산부는 ... 놀랄 수 있어요
오늘 아침 눈 뜨자마자
아파트단지 안에 있는 놀이터에 갔습니다.
지난 추석, 꼬꼬마 동생들하고 놀아주려고 놀이터에 갔다가 동네 아이와 했던 약속이 떠올라서였습니다.
<지난 추석>
나 : (이사온 지 십년 만에 놀이터를 처음 이용해본다.) 이야, 너는 정말 여기 기구들을 잘 타는구나.
여덟살 아이 : 네. 맨날 오는 걸요.
나 : 놀이터에서 매일 놀고, 정말 좋겠는데!
여덟살 아이 : 근데 여기 벽에 너무 욕이 많아서 무서워요.
놀이기구를 둘러보니 낙서 투성이였다. '존나' '씨발' '도둑년' '개새끼' 가 대부분인 낙서.
내가 봐도 섬뜩한 욕설인데, 매일 여기서 노는 애들에겐 무서울 터다.
매일 여기를 지나가는 데도 한번 눈여겨 보지도 않았다는 게 확 부끄러웠다.
나: 정말 그러네. 언니가 여기 욕 지워줄게. 약속할게.
라고 해놓고, 시간이 흘렀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놀이터를 지나가는데, '얼른 지워야지' 하며 지나가지만 미뤄두고 있었다.
이러다가 까먹어 버릴까봐 오늘은 더 미루지 말고 지워야겠다 생각하니 아침에 눈이 반짝 떠졌다.
아이들의 낙서의 대부분은 '나대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요 나이의 아이들에겐 '나대는 것'이 큰 화두인 모양이다.
헉. 도대체 아이들이 이런 말은 어디서 배웠을까? ㅠㅠ
before : 지우기 전
after : 지운 후
욕을 지우면서 뭔가 아이들의 언어와, 세계와, 고민을(?) 엿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 아세톤을 들고 나갔을 때는 '어떻게 하면 놀이터에 낙서를 안 쓰게 할 수 있을까?' 생각만 했는데,
놀이터의 낙서들을 보니 뭔가, 아이들이 왜 여기에 와서 낙서를 할까. 누구에게 말을 걸고 싶었을까. 자기들이 여기 있다고 흔적을 남기고 싶었을까.. 하는 궁금증이 들었다. 아이들이 굉장히 자기들만의 고민이 있고, 외로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여기 낙서하는 애들이 고정 멤버가 있는 것 같은데, 좀 만나보고 싶었다.
막상 만나면,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또 무서워서 쫄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놀이터를 계속 관찰하다보면 아이들을 만나지 않을까. 그 무섭다는 요즘 아이들의 세계와 언어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놀이터만 매주 사진을 찍어보다보면 언젠간 만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도 들고.
자기 아이들과 대화할 방법을 모르는 부모들이 있다면, 여기 놀이터에 와서 같이 사진을 찍으면서 아이들의 언어를 이해해 보자고 제안해 보고도 싶은데.
어떻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