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16
올해 영화를 많이 보진 않았지만,
내겐 올해 가장 인상깊은 영화가 되었다.
<우리도 사랑일까 (Take This Waltz)>
더불어, 영화 포스터 문구 중에서 가장 공감가는 카피를 달고 있기도 하다.
'사랑의 열병과 환상에 대한 섬세한 통찰'
영화를 보고 카피를 읽으니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사랑스럽기 그지없는 우리의 주인공 마고는 스물여덟 프리랜서 작가인데, 결혼 5년차로 아직 달콤한 신혼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 남편 루는 치킨 요리책을 쓰는 남자로, 덩치만큼이나 듬직하고(세스 로건!) 매일 다양한 조리법으로 닭요리를 해 줄만큼 아내를 사랑하는데, 듬직한 만큼이나 조금 둔하다. 마고는 자상하고 착한 남편 루와의 결혼생활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만, 문득문득 공허함을 느낀다.
마고는 '두려워하는 걸' 두려워한다. 예를들면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 갈아타다가 놓치면 어떡하지 걱정하는 것. 무언가 사이에 끼어있어 붕 떠 있는 자기상황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하루는 다리에 장애가 있는 것처럼 휠체어에 앉아 승무원의 안내를 받았는데, 그걸 옆에 앉은 남자 대니얼이 콕 찝어낸다. "당신, 장애가 있다는 거 뻥이죠?"
마고의 맘 속을 들여다 본 것처럼 콕, 콕 찝어내는 이 남자. 내가 봐도 매력 덩어리다. 비행기에서 내려 택시를 탔는데, 아뿔싸. 이 남자 바로 맞은 편 집에 살았다. 그 무섭다는 '이웃집 남자' .
마고는 남편과의 2% 부족한 행복한 일상이 이어지고, 그 부족한 2%를 대니얼과 대화 속에서 찾았다. 자꾸 마음이 기우는 마고는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 때문에 대니얼과 관계를 진전시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우리 30년 뒤 오늘 이 시간에 만나요. 그 때 키스해요. 나는 35년동안 남편에게 충실한 아내였을 테니까, 딱 한번 다른 남자와 키스한다고 미안하지는 않겠죠."
하지만 마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불행히도 남편 루는 마고가 절실하게 되돌리고자 하는 로맨틱함을 번번히 뭉개고 말았다. 예를 들어 결혼기념일 외식하러가서 "우리가 맛있는 거 먹으러 왔지 대화하러 왔니?" 라는 말로 마고의 마음에 비수를 꽂고도 아무 것도 모른채 얌냠 밥만 잘 먹은 것 처럼.
결국 마고는 루를 떠나 대니얼에게 갔다. 그리고 둘이 상상만했던 격정적이고 로맨틱한 날들을 보내고, 시간이 흘러 둘은 다시 미지근해 졌다.
끝. 스토리는, 별게 없어보인다.
가장 놀라웠던 것은, 영화의 첫 장면과 끝 장면이다.
첫 장면에서 마고가 부엌에서 빵을 굽는데, 무언가 무료하고 약간 불안한 표정으로 멍하게 있다가 남자 실루엣이 마고 곁을 무심히 지나가자 마고가 그를 등 뒤에서 껴안는데, 남자의 동작은 지극히 일상적이고 무심하다.
영화가 끝나기 직전까지도 그 장면을 첫 남편 루와의 무료한 결혼생활을 암시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그 장면이 등장하고, 그 남자는 대니얼이었다. 즉 어떤 사람과든 시간이 지나면 로맨틱함이 사그라든다는 것을 암시하는 듯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블로그 리뷰를 보니 '로맨틱함은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사라진다.'고 결론 지은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과연 '누굴 만나든 로맨틱함은 없어지니 걍 만족하면서 살아라.'라는 허무주의를 말하려는 걸까?
아니다. 내겐 마고가 루를 떠난 후, 대니얼과 보낸 강렬한 시간이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부러웠다.
비록 언젠가는 사라진다 해도 저렇게 환상적인 순간을 인생에서 한 번이라도 경험하는 건, 충분히 가치있는 일 아닌가? 아름다운 순간을 가지고 싶어 바둥거리는게 인생 아닌가 하고 말이다.
사랑이 아닌 어떤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중에 사람들에게 '거봐, 결국 사라지고 말 것을 왜 생고생을 했니?'란 소리를 듣는다 해도, 꼭 해 보고 싶었던 걸 이루려는 노력은 결과가 어쨌든 결코 헛된 게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포일러로 가득 찬 리뷰지만, 알고 본대도 충분히 재미있을 거라고 확신한다. :)
나도 또 한 번 보고 싶다.